남미를 세미패키지로 다녀온 것은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 자유여행으로 남미를 갔다면 내가 보고 온 것의 반의 반의 반도 못 봤을 것이다. 블로그들을 봤을 때 남미를 자유여행으로 가는 분들은 남미 5개국(페루, 볼리비아, 아르헨티나, 칠레, 브라질)에 에콰도르나 콜롬비아 또는 중미를 끼워서 두 달 동안 다녀온 것 같았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딱 한 달. 세미패키지로 다녀와 알차게 사용할 수 있었다. 그래도 정말 먼 훗날 남미를 또 갈 기회가 생긴다면 자유여행으로 가고 싶다. 좋았던 곳들, 아쉬웠던 곳들에서 더 오래 머물고 싶다.
1. 남미 세미 패키지의 진실(?)
세미 패키지를 예약하고도 한참동안 팀장님(인솔자)과 이동만 함께 하고 나머지는 다 자유일정인 줄 알았다. 선택투어도 자유롭게 선택하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블로그를 읽다보니 생각보다 패키지 같다는 느낌을 많이 받게 되었다. 그리고 그건 사실이었다.
이동을 같이 하는 것은 물론이고 페루, 볼리비아까지는 거의 패키지라고 봐도 무방했다. 같이 일정을 소화하고 점심에 같은 식당을 간다. 선택 투어 중에서 3가지(리마 시티투어, 라파즈 시티투어, 리우 데 자네이루 시티투어)는 이동 동선상 무조건 선택할 수밖에 없다. 이것 자체를 단점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데 이것들을 미리 알지 못한 것은 조금 단점으로 느껴진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있게 남미 세미 패키지에 대해 앞으로도 더 글을 남겨보고자 한다.
2. 남미 세미 패키지 장점
1) 여행 계획을 내가 세우지 않아도 된다.
남미는 치안 문제 때문에 계획을 더 꼼꼼하게 세워야 할 것 같은데 여행 정보는 또 부족하다. 세미 패키지를 선택하면 이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여행 동선은 물론이고 항공, 숙박, 현지 교통 다 내가 신경 쓸 필요가 없다. 마추픽추 예약하기도 쉽지 않다고 하는데 역시 여행사에서 다 해준다.
2) 팀장님(인솔자)이 계신다.
남미 여행에는 정말 변수가 많다(고 들었다). 우리 팀은 감사하게도 그런 변수를 거의 만난 적이 없다. 페루에 도착하여 우리 팀의 캐리어 2개가 분실된 것, 우유니행 항공이 지연된 것을 제외하고는. 미국 경유지에서 입국 심사가 늦어져 단체로 다음 항공편을 타지 못한 경우, 시위 때문에 버스가 꼼짝을 못하고 있다가 아예 나스카에 가지 못한 경우... 이런 상황들을 혼자 마주했다고 생각하면 좀 아찔하다. 어떻게든 해결이야 했겠지만 마음 졸이며 고생하는 시간, 빠르게 대처하지 못하여 여행 일정이 딜레이 되는 상황을 상상하면 마음이 아프다. 어쨌든 우리가 만난 변수에 대해서는 팀장님이 매우 잘 대처해주셨고 팀장님에 대한 믿음이 있기에 변수에 대한 걱정도 별로 없었다.
뿐만 아니라 항상 여행지마다 일정, 맛집, 편의시설, 환전소 등등의 정보를 알려주시고 카톡에 남겨주셨다. 경험이 많으시니 여행 중 여러 팁을 알려주셨고 모르는 것이 있을 때 팀장님께 물어볼 수 있었다. 팀장님이 고산지대에서 건강 상태를 체크해주시는 등 개개인에게도 신경을 정말 많이 써주셨다. 그리고 정말 세심하셔서 비건이라고 팀장님께 말한 적이 없음에도 어떻게 아시고는 탱고 공연(선택투어)에서 식사메뉴 선택할 때 도움을 주시고 신경 써주셨다.
남미에서는 영어가 거의 통하지 않는다고 해서 스페인어를 공부해갔는데, 팀장님이 계시니 내가 현지에서 직접 의사소통해야 할 일이 없었고 스페인어 쓸 일도 없었다. 워낙 관광지로 돌아다니니 식당에서는 영어, 바디랭귀지로 주문이 가능하다.
3) 현지에서도 대부분 전용차량으로 이동한다.
페루 쿠스코에서 푸노로 넘어갈 때, 칠레 푸에르토 나탈레스에서 아르헨티나 엘 칼라파테로 넘어갈 때 총 2번 현지 버스를 이용하였다. 나머지는 모두 전용차량을 이용하였다. 전용 차량을 이용하니 교통수단을 기다리는데 사용하는 시간이 들지 않고, 언제 내려야 하는지 긴장하고 있을 필요 없이 잠에 들 수 있고(남미 여행 내내 출근 시간보다 빨리 일어났다. 매우 피곤하다.), 캐리어를 가지고 다니는 데 어려움이 없다.
4) 큰 캐리어를 가져가도 된다.
그러니까 3번의 이유로 큰 캐리어를 가지고 가도 된다.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캐리어가 24인치 캐리어이기에 그걸 가져갔는데, 내 캐리어가 가장 작았고 나만 맨날 같은 옷 입은 것 같다.
5) 한 달이라는 시간 내에 남미를 알차게 여행할 수 있었다.
위의 1~3번의 이유로 한 달이라는 한정된 시간 내에 남미를 알차게 여행할 수 있었다. 또 짜여진 일정에 맞추어 강제(?) 여행해서이기도 하다. 직주근접 생활을 5년 동안 한 나는 여행 내내 평소 출근할 때의 기상시간 보다 일찍 일어났다. 자유여행이었다면 의지박약으로 이렇게 일찍 기상하여 부지런히 여행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6) 자유 시간이 많다.
자유여행 러버에게는 완전 패키지가 아니라는 것이 큰 장점이었다. 내가 원하는 곳에 가고 내가 원하는 만큼 머무를 수 있는 자유가 정말 소중하다. 페루, 볼리비아에서는 거의 패키지 같았지만, 일정상 같은 식당을 간다고 해도 메뉴 선택은 완전히 자유였고 저녁은 늘 자유식사였기 때문에 원하면 저녁을 패스하거나 과일 등으로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것도 좋았다.
7) 선택투어 강요가 없다. 당연히 쇼핑도 없다.
두 번의 패키지 여행 경험으로 패키지 여행을 정말 싫어하게 되었다. 베트남에 가서 영혼 없이 매트리스를 보고 있었을 때란... 세미 패키지이고 선택투어 옵션이 많지만 강요는 없다. 심지어 팀장님이 꼭 추천하는 투어, 체력을 고려하여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투어 나누어 알려주실 때도 있었다. 그런데 사전 미팅 진행해주신 분과 팀장님의 의견이 달라서 당연한 이야기긴 하지만 마지막 선택은 나의 몫이었다. 그리고 사실 나는 대부분의 선택투어를 했고 만족스러웠다.
8) 팀원들과 함께 여행한다.
나는 늘 가족, 가까운 친구와 여행했다. 혼자 여행을 갈 때면 정말 혼자서만 다녔다. 그런데 이 기회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보는 것이 큰 경험이었고 여럿이 함께 여행하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남미 여행 특성상 우리보다는 나이가 많으신 분들과 함께 여행했다. 감사하게도 우리를 예뻐해주시고 많이 챙겨주셨다. 팀원들과 서로 간식도 나눠먹고 맛집도 공유했다. 아픈 사람이 있으면 다같이 걱정해주고 약도 나눠주었다. 그리고 여행 둘째 날 이후로는 삼각대를 펼친 적이 없다. 서로 사진을 정말 많이 찍어주었다. 그리고 치안이 안 좋은 도시에서 같이 다닐 경우 안심이 된다.
9) 현지 투어의 질이 높다.
현지 가이드의 설명이 정말 좋았다. 설명 내용도 좋았고 내가 영어를 잘하는 편이 아님에도 설명이 귀에 쏙쏙 들어왔다. 나는 학창시절부터 궁금한 것이 잘 없는 타입이었는데 현지 가이드들의 설명을 들으며 궁금한 것이 생겨 질문하기도 했다. 브라질에서는 한국인 가이드였는데 역시 설명도 잘해주시고 세심하게 챙겨주셔서 좋았다.
3. 남미 세미패키지 단점
1) 사회생활해야 한다.
내향인은 처음 만난 사람들과 여행하는 것이 쉽지 않다. 팀원들은 50~60대였다. 사전 미팅 갔을 때 여행사 직원분이 "이번 팀은 정말 연령대가 낮아요. 즐거운 여행 하고 오세요!"라고 하셔서 친구랑 나랑 눈 마주치며 서로의 동공 지진을 보여주주었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하지만 어떤 팀은 전원 70대 이상으로 구성되기도 한다고 하니, 우리 팀의 연령대는 정말 낮았던 것이 맞다.
그래도 사회에서 10년을 구른 직장인으로서 사회생활 내공이 쌓여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리고 혼자가 아닌 친구들과 함께였기에 더 수월했다. 또 남미 여행하시는 분들은 이미 나보다 훨씬 여행 경력이 많으신 분들이다. 젠틀하시고 배려심 많은 분들이었다. 우리를 정말 많이 예뻐해주셨다. 이 나이에 병아리라고도 불려보았다. 그럼에도 한 달 동안 직장 최고 상사 여러 명과 여행하고 있다는 생각이 문득문득 들었고 듣고 싶지 않은 말을 듣고 있어야 할 때도 있었다.
2) 개인의 시간을 존중받지 못할 때가 있다.
1번의 연장선인 단점이다. 페루에서 볼리비아까지는 거의 패키지나 다름없다. 팀장님이 4명씩 조를 짜주신다. 식당에서 4명씩 함께 앉아 식사를 해야 하고 볼리비아에서 오프로드 투어를 하는 동안에는 4명이 함께 차를 타고 다닌다. 그러다보니 칠레, 아르헨티나, 브라질에서의 자유시간 때도 함께 다니는 경우가 있었다. 같이 간 친구들하고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을 때도 있었다.
3) 일정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다.
페루의 쿠스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엘 아떼네오 서점에서는 더 오래 있고 싶었다. 마추픽추에서 시간이 더 주어졌다면 와이나 픽추도 가 보고, 엘 찰텐에서의 시간이 더 길게 주어졌다면 피츠로이 정상까지 도전해봤을 것이다. 정해진 일정이 있으니 아쉬움을 뒤로 하고 떠나야 하는 곳들이 있었다. 반면 좀 루즈하게 느껴지는 도시들도 있었다. 또 산티아고에는 월요일에 도착하였는데 월요일에는 미술관과 박물관이 모두 닫았다. 미술관, 박물관도 못 가고 소매치기가 많은 도시라 도시 자체를 제대로 둘러보지도 못해서 아쉽게 지나간 하루였다.
4) 여행 전까지는 언제 자유시간이 주어지는지 알 수가 없다.
세미 패키지를 예약하고서도 한참 동안은 나라간, 도시간 이동만 팀장님, 팀원들과 함께하는 것인 줄 알았을 정도로 일정에 대한 정보를 알기가 어렵다. 때가 되면 여행사에서 일정표를 메일로 보내주고 여행이 임박하면 사전 미팅도 가지만 역시 일정표 중에서 언제가 자유시간이고 언제가 단체로 움직이는 일정인지 알기가 어려웠다. 실제로 여행 중에 팀장님이 라파즈 시티투어와 리우 데 자네이루 시티투어는 이동하면서 진행되기 때문에 선택투어이지만 꼭 선택해달라고 하셨다(물론 여행 초반에 미리 공지해주셨고 투어 자체도 좋았다.). 그렇다 보니 내가 미리 알아본 맛집이나 관광지를 전혀 갈 시간이 없는 경우도 있었고, 전혀 준비하지 않았는데 뜻하지 않게 자유시간이 주어진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오지투어 남미 세미패키지를 선택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까 싶어 여행 중 여행 일정을 간단하게 남겼었다.
2025.01.09 - [여행 기록/2025 남미 오지투어 세미패키지 일정] - 오지투어 남미여행 4일차
5) 일행이 홀수일 경우 싱글룸 차지가 발생한다.
나는 친구 두 명과, 그러니까 셋이 오지투어 남미 세미 패키지를 신청했다. 10년을 함께 여행한 친구들이다. 늘 3인실을 사용했는데, 세미 패키지에서는 2인 1실을 사용한다. 룸 조인도 고민을 했는데 결국 싱글룸 차지를 1/n로 내고 돌아가면서 혼자 편하게 방을 사용하였다. 그런데 싱글룸 차지가 좀 세기는 하다. 또 일행과 방을 붙여서 배정해주지 않는다. 8층, 23층 이렇게 2개의 방을 배정 받은 적도 있다.
그리고 여행 중 4인 1조로 조가 짜여진다. 함께 식당에 갈 경우 넷이 앉아서 먹고 우유니 3박 4일 투어 중에는 한 차량에 같은 조 4명씩 탑승한다.
4. 오지투어 남미 세미 패키지를 선택하는 분들께!
- 저에게는 단점보다 장점이 훨씬 컸다고 생각하여 후회하지 않습니다.
- 세미 패키지에는 캐리어 큰 것 가져가도 됩니다!! (아르헨티나 국내선 수하물 무게가 15kg으로 좀 타이트하기는 한데 24인치 캐리어 가져갔던 저는 큰 캐리어가 간절했습니다.)
- 삼각대 안 가져가셔도 됩니다. 서로 찍어주세요. (바람이 많이 불어서 삼각대 못 세워요.)
- 가능하다면 일행 4명 인원을 맞춰가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안 되면 짝수로라도?! (네... 물론 쉽지는 않죠. 저희도 남미 여행 같이 갈 사람을 1명 더 구해보려 열심히 노력했지만 다들 남미는 갈 생각을 안 하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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