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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 술술 읽히지만 어딘가 찝찝한 마무리...

by 티북 2024. 8.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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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채식주의자
저자: 한강
주제분류: 연작소설
출판연도: 2007

 어느 날 영혜는 남편에게 채식주의자가 되겠다고 선언을 한다. 그리고 가족들과 갈등을 빚게 되며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영혜의 선택은 폭력에 대한 저항이다. 

 

1. 맨부커상을 수상한 책

 맨부커상은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입니다. 한강 작가는 2016년 《채식주의자》로 한국인 최초로 맨부커상을 수상합니다. 《채식주의자》는 <채식주의자>, <몽고반점>, <나무 불꽃> 세 소설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연작소설입니다. 단편으로만 읽기에도 무리는 없고요, 하지만 세 편을 함께 읽을 때 진정한 가치가 발휘된다고 생각합니다. <몽고반점>은 단독으로 2005년에 이상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사실만으로도 이 책에 대한 궁금증을 갖기에는 충분했습니다. 

 책이 술술 읽히기는 하나,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는 책의 묘사에 불편함이 있었고 무엇을 느껴야 할지 혼란스러웠습니다. 두 번 읽고 친구들과 책에 대해 이야기 나누니 비로소 조금 더 깊이 있게 이해할 수는 있었지만 어딘가 찝찝한 마무리에 책장을 덮고 개운한 느낌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처음 읽을 때 아침으로 과일과 요거트를 먹으며 읽었는데 그릇에 소시지라도 있었으면 어쩔 뻔했나 싶었습니다. 고기를 먹을 때는 이 책을 읽지 않기를 바라며, 되도록이면 아무것도 먹지 않으며 읽기를 추천합니다.

 

2. <채식주의자>

 이 책은 평범했던, 그러나 어느 날 꿈을 계기로 채식주의자가 된 '영혜'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세 편의 소설이 진행됩니다. 첫 번째 이야기 <채식주의자>에는 영혜가 채식주의자가 된 계기, 그러니까 꿈에 대한 묘사가 고스란히 나옵니다. 날고기에서 떨어지는 붉은 피, 서두르는 남편 때문에 일으킨 실수에 오히려 더 소리 치는 남편, 어린 시절 어머니가 도마에 칼질하던 모습에서 느낀 두려움, 살해당하는 두려움 혹은 자신이 살해했다는 두려움, 어린 시절 자신의 다리를 물어뜯은 개를 아버지가 오토바이에 묶고 달리는 모습, 그 개로 국을 끓여 잔치를 벌였던 일. 독자는 영혜의 꿈에 대해 읽으며 두려움과 안타까움을 느끼지만, 책 속 영혜의 남편이 영혜에게 들을 수 있는 말은 "꿈을 꿨어."라는 말 뿐입니다. 영혜는 하루하루 꿈을 꾸면서 냉장고 속 고기와 우유, 계란까지도 모두 버리며 더 극단적인 채식주의자가 되어가고 더 야위어갑니다. 남편은 영혜의 가족(영혜의 어머니, 아버지, 언니, 언니의 남편)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하지만 상황은 개선되지 않고, 아버지는 영혜에게 고기를 억지로 먹이려는 폭력에 영혜는 자해를 합니다. 마지막 장면은 병원 벤치에서 영혜가 동박새를 움켜쥐고 있는 채로 끝납니다.

아내의 손아귀에 목이 눌려 있던 새 한마리가 벤치로 떨어졌다. 깃털이 군데군데 떨어져 나간 작은 동박새였다. 포식자에게 뜯긴 듯한 거친 이빨자국 아래로, 붉은 혈흔이 선명하게 번져 있었다. (p65)

 

 이야기 앞부분에 영혜는 지극히 평범한 여성으로 나옵니다. 영혜를 묘사하는 남편의 시선이 굉장히 불편하게 느껴졌는데, 묘사가 가부장적인 시선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영혜의 아버지 또한 굉장히 가부장적인 사람입니다. 아버지가 영혜에게 고기를 강제로 먹이려 했을 때 가족 또한 방관했습니다. 영혜는 줄곧 그런 폭력과 억압에 노출되어 왔습니다. 영혜의 평범함은 이러한 환경 탓에 타의적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책 소개를 읽는데, 이 책은 육식을 거부하며 가족들과 갈등을 빚는 '영혜'가 중심인물인데, 영혜를 둘러싼 세 인물인 남편, 형부, 언니의 시선에서 서술되면서 영혜는 단 한 번도 주도적인 화자의 위치를 얻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정말 그렇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영혜가 채식주의자가 되는 것은 자의적으로 선택했습니다. 폭력과 억압에 대한 저항으로 선택한 것이 채식인 것입니다.

 그런 영혜가 마지막 장면에서 동박새를 물어뜯은 것은 정말 기이하게 느껴졌습니다. 억압받았던 것이 표출되고 노출되어 왔던 폭력이 영혜에게도 무의식적으로 나타난 것일까요? 원래도 브래지어 하는 것을 싫어했지만 병원 벤치에서는 환자복 상의를 벗고 있는 모습에, 영혜가 자기 자신을 완전히 놓아버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3. <몽고반점>

 <채식주의자>에서의 사건 이후 영혜의 남편은 영혜와 이혼합니다. 영혜의 형부는 영혜에게 안타까움을 느끼는 동시에 영혜에게 몽고반점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성적 욕망을 느낍니다. 영혜의 형부는 예술이라는 이름 아래 해서는 안될 선택을 합니다. <몽고반점>의 이야기는 조곤조곤 진행되지만 저의 감정은 정말 불편했습니다. 또 <채식주의자>에서는 영혜의 남편이 영혜보다 영혜의 언니를 더 매력적으로 느끼고 좋은 배우자감으로 여기며 아쉬워하는 반면에 <몽고반점>에서는 영혜의 형부가 자신의 아내보다 영혜를 더 매력적으로 여기는 점에서 정말 짜증났습니다.그리고 영혜는 형부의 작품의 일부가 되어, 자기 자신이 오롯이 식물이 되기를 바랍니다.  

 

4. <나무 불꽃>

 이 모든 사건 후 <나무 불꽃>은 혼자 남은 영혜 언니의 시선으로 진행됩니다. 이 소설에서 가장 안타까운 사람은 영혜의 언니 인혜였습니다. 인혜는 한국의 장녀를 대표하는 인물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영혜가 모든 것을 놓아버렸을 때도 인혜는 책임감으로 살아갔습니다. 남편과 이혼 후 혼자 아들 지우를 키우고 정신병원에 있는 영혜도 돌보았습니다. 아들이 없었다면, 네 살 어린 동생(영혜)이 없었다면 인혜 역시 모든 것을 놓아버릴 수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인혜는 자기 자신을 쉬게 해주고 싶은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또 어디에서부터 잘못된 것인지를, 이 일들을 막을 수는 없었는지를 생각합니다. 인혜를 둘러싼 모든 사람의 삶이 모래산처럼 허물어져버린 것이, 허물어져버린 삶보다 인혜의 삶이 참 가혹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가부장적 체제를 비판한다는 점에서 이주혜의 《자두》가 떠오르기도 했고, 영혜가 식물이 되려 하는 모습에서는 청소년 소설 《퓨마의 돌》이 떠오르기도 했고, <몽고반점>을 읽으면서는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인생은 늘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같은 고난을 맞이해도 각자 대처 방법이 다르며 끝내 극복하지 못하기도 합니다. 인생의 다양한 모습, 사회의 다양한 군상을 보여주는 소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주관적인 추천지수: ★★★☆☆
별 5개: 꼭 읽어보라고 추천하고 싶은 책
별 3~4개: 관심이 있다면 읽어보라고 추천하고 싶은 책
별 2개: 굳이 추천하고 싶지 않은 책
별 1개: 나쁜 책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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